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인체에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이 유혹을 이겨내려면 자기 통제력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인내하며 버텼지만 결국 밤이 되면 야식으로 무너진다. 인간이 운동을 무한대로 할 수 없는 건 에너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것처럼, 에너지가 소진되면 인내력에도 한계가 온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자아 고갈 이론이라고 한다.
자아 고갈 이론에는 전제가 따른다. 첫째, 자기 통제력은 한정된 에너지 자원이다. 둘째, 자기 통제력을 사용하면 이 자원은 고갈된다. 세째, 자기 통제를 위한 에너지는 보충되지만 보충되는 속도는 고갈되는 속도보다 느리다. 네째, 자기 통제를 위한 반복적인 훈련을 하면 자원의 용량을 확장시킬 수 있다. 마치 근력운동을 하면 근육량이 늘어나는 현상과 같다.
2017년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비디오를 틀어주고 A그룹은 영상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글자를 읽지 말라고 주문했고, B그룹은 자유롭게 영상을 감상하도록 했다. 실험이 끝난 후 두 그룹 모두의 혈당을 체크했는데, B그룹에 비해 A그룹의 혈당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하는 데도 에너지가 들지만 무언가를 참는 데도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행동 경제학자 다니엘 카노먼은 말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입고 싶다는 유혹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걸 가질만한 돈이 없으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유혹을 참아야 한다. 그렇게 인내의 상황이 수없이 반복되면 유혹을 피하기 위해 내리는 결정때문에 뇌가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 이런 수고가 반복되면 의지력은 점점 소진된다. 이런 상태를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주머니가 얄팍하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먹고싶거나 사고싶다는 욕구를 계속 참게되면 에너지는 모두 소진되고 한계에 부딪힌다. 그렇게 인내심이 바닥나면 결국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빚을 지게 된다. IMF때 경제가 위축되자 정부는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신용카드 발급 제한을 완화했다. 말이 완화지 사실상 누구라도 쉽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카드를 긁어대기 시작했고 지불능력이 없었던 사람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문명화되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소비의 유혹이 없기때문에 빚을 질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그러저러 살아간다. 하지만 이미 잘 발달된 문명의 혜택을 받아본 사람들은 그 혜택이 계속되길 바라고 늘 유혹에 노출된다. TV 광고에선 마치 "넌 이걸 사야돼. 안사고는 못배길거야"라고 말하는 듯 신상이 넘쳐나고, 정부는 금리를 인하해줄테니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빚을 지고,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게 온전히 개인의 잘못일까? 물론 책임지지 못할 빚을 지고 자아 고갈 이론의 전제 중 네번째를 게을리했다는 책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빚을 지고 카드를 쓰도록 동기를 부여한 이 사회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범죄율과 자살률이 높다는 건 국가가 일을 게을리했거나 알면서도 외면했기 때문이다.
자기 통제력과 인내력은 부유하게 자란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실패와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강하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사람은 자기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인내하고 참기보다는 그 즉시 불만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한다. 비근하지 않은 예로 지난 대선때 있었던 후일담 두어개 소개한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MB아바타라는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씌우며 깜깜이 기간에 실버크로스를 허용하는 패착을 만들었다. 안 후보 지지자들은 안캠을 비난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사실 이 아이디어는 캠프와 상의한 게 아니라고 한다. 지지율 하락으로 초조해진 안 후보는 자기 통제력과 인내력의 임계점에 다다랐던 게 아닌가 싶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바른정당 의원들은 유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이에 유 후보는 명분있는 패배, 즉 완주하자며 우리가 소수가 되더라도 정의당처럼 가치있는 정치를 하자고 말했다. 이 말에 바른정당 의원들이 대로(大怒)했다고 한다. 그들의 자아는 춥고 배고픈 걸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아가 고갈되면 견디지 못하고 야식에 무너지고 만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한 윤석열은 서울대 법대에 다니던 시절 모의법정에서 검사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비록 모의법정이었지만 법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윤 지검장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 판결이었다. 법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사를 지검장으로 임명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윤 지검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5.18 기념식에서 피해자 가족이 흘리는 눈물에 같이 울어주고 안아주는 게 진짜 사람의 모습이다. 권위주의 타파와 국민과 함께 소통하는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 전작권을 회수하고, 동아시아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대통령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더 나아가 신냉전시대를 종식시키고 세계 평화를 주도하는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길...